닫기

[밀라노 통신원의 시선] 인종차별과 명품푸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m2.asiatoday.co.kr/kn/view.php?key=20210316010009806

글자크기

닫기

정덕희 밀라노 통신원

승인 : 2021. 03. 16. 09:54

인종차별과 명품푸어 현상은 둘 다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
909163392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 바이러스”, “중국인 너네 나라로 돌아가.”

최근 길에 다니면서 종종 듣는 말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동양인을 향한 무례한 언행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금 더 노골화됐습니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몇 번 겪고 나서 저는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정말 일부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사람들의 나쁜 행동인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 뒤에는 동양인은 가난하고 문화 수준이 낮으며 이민 1세대의 경우 현지어를 못 할 것이라는 집단의 편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본인도 모르게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인식이 언행에 묻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현지인들과 대화하면서 당황했던 경우가 꽤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아는 이들은 한국이 어느 정도 사는 나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아파트 가격이나 물가를 물어보곤 합니다. 국민소득을 대놓고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으니 돌려 묻는 것이지요. 한국의 수도인 서울과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인 밀라노를 비교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훨씬 비싸다고 대답하면 대개는 입을 닫아버리거나 화를 내는 이도 있었습니다. (2020년 기준 밀라노 시내 1㎡당 평균 가격은 4756유로, 우리 돈으로 약 645만원, Immobiliare.it참조 )
혹은 한국 경제 발전을 아는 이들은 자국 문화가 한국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역사 교사를 만났는데요. 저도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사는 저에게 어느 나라 역사를 공부했냐고 물어봐서 한국사와 중국사 그리고 유럽사 전반을 공부했다고 답했습니다. 저에게 다시 질문하더군요. 이탈리아사는 공부 안 했냐고 해서 안 했다고 했더니 화난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물어버렸습니다. 침묵의 의미는 자국 역사는 서양사에서 중심이고 유럽, 남미, 북미 학생들이 다 배우는 데 동양인인 너희는 왜 안 배우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만한 태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서 일까요?

실은 겉으로는 콧대가 높은 그들이지만 속으로는 미래를 절망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찍이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성공해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동시에 부작용인 환경파괴, 극심한 빈부격차, 도시화로 인한 개인주의, 경쟁사회의 도래, 유대감 상실, 고립감 등을 경험했기에 현대 사회에 비관적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게임 등을 즐기거나 혹은 미래를 암울하게 전망한 나머지 인류에 재앙이 온다는 영화, 드라마 등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산업화로 이제 먹고 살만한 한국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입니다.

이에 더해 이탈리아 특유의 지연, 혈연으로 이어진 사회와 그로 인한 부정부패, 마피아, 느리고 비효율적인 사회 시스템, 인구 고령화 등에 대한 실망으로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1990년 대 초반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었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상황에 자조적입니다.

정리하면 이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있고 당당해 보이지만 실은 여러 원인으로 인해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타인종에 대한 우월적인 태도로 순간적이나마 되찾고 싶은 심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 보상을 다른 것으로 얻으려는 심리가 한국에는 없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충분한 소득이 없는데도 명품을 구매하려는 명품 푸어족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의 많은 기업들이 외국에 팔려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세계정세에 귀를 닫고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무시로 순간적인 우월감을 맛보려는 태도, 없는 돈 끌어모아서 명품을 구매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과시하려는 태도가 유사점이 있다고 봅니다.

코트라에서 2월 발간한 한-이탈리아 교역동향 및 전망에 따르면 무역수지 적자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이탈리아 10대 수입품목 10개 중 5개가 가방, 신발, 직물제와 편직제 의류, 주얼리 등 소비재입니다. 이중 1위는 가방인데 2020년 한 해 이탈리아에서 가방만 13억400만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1조5000억이 조금 안 되게 수입했습니다. 참고로 같은 기간 한국의 이탈리아 10대 수출품목 중 1위는 차량입니다. 3억7200만달러(약 4200억원)이 조금 넘는 금액만큼 수출했습니다. 순간 과시를 위해 상당한 금액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탈리아와 한국, 두 국가를 가운데서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환상을 걷어내고 협력한다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산업구조가 반대라서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덕희 밀라노 통신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