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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호흡 가다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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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2. 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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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호흡은 들숨과 날숨을 의미한다. 들숨이나 날숨이 없으면 그 생명은 끝이다. 코끝에 호흡이 멈추면 곧바로 시체가 된다. 호흡을 길게 하면 긴장이 완화된다. 깊은 들숨을 통해서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날숨을 내뱉을 수 있다.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대통령과 대통령 대행인 국무총리 탄핵으로 올해 연말 우리 모두는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들숨과 날숨이 편안해야 마음의 평안이 있다. 우리는 지금 들숨과 날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건가.

탄핵 정국으로 많은 인파가 매일 광화문 등 전국 곳곳에서 가두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비상계엄으로 야기된 불안한 정국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망령을 소환하는 사람들이 는다. "이러다가 IMF 또 겪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환율이 그 단초가 될지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환율이 급등하게 되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투입해야 하니 세계 10위권 외환보유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외환 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IMF의 가혹함은 당해 본 사람만 안다. 기업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IMF 구제금융의 대가는 잔인했다. 1990년대 말 우리의 외환보유고는 수백억 달러 수준이었다. 외국 기관들이 빌려준 달러를 갚으라고 재촉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당시 재정경제원(지금의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 공무원들은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해외 시장 동향을 살폈다. 바닥을 향하는 외환보유고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개인은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기운이 빠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사람들, 부도로 길거리에 나앉은 사업자들, 일자리를 잃은 가장을 멍하니 쳐다봐야만 했던 우리 이웃들. 모두가 넋을 잃었다.

경험상으로 IMF 체제는 환율 급등→외환보유고 감소→국가신용등급 하락→IMF 구제금융→강도 높은 구조조정 순으로 왔던 것 같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27년이 지났다. 그사이 우리 경제는 활기차게 성장했다. 수출 호조 덕에 외환보유고가 크게 늘었다. 형편이 폈다. K팝 등 한류가 세계를 강타했다. 대한민국 여권 신뢰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국격(國格) 높아짐을 모두가 느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모두의 일상이 완전히 헝클어졌다. 그런 가운데 무안국제공항에서는 사상 최악의 항공기 참사가 빚어졌다. 국격이 크게 요동치는 듯하다.

이제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달러화 환율은 마지노선이라는 1500원을 앞두고 있다. "1700원까지 간다, 2000원을 넘을 것"이라는 등 얘기가 나온다. IMF 직전에도 환율이 급등했다. 수출기업이야 좋겠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수출이 약세로 돌아선다면 외환보유고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제 신용평가사가 우리의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기라도 한다면 외환보유고 급감을 예상해야 한다. 조달금리 하락에도 대출 금리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출금리 급등은 한계선상에 있는 개인 및 자영업자들에게 독약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IMF에 금융위기가 겹쳤다"면서 경영난을 호소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이 IMF 직전과 유사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듯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대통령 대행의 대행 경제부총리의 탄핵이 예상되는 등 탄핵 정국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은 민생 안정보다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에 몰입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안한 정국을 안정화시키고 흔들리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두가 경제 회생과 국격 회복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 같은 이런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경제는 급락세를 피하기 힘들다. 이제 20일 후면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제까지 우리를 위해 미국의 국익을 양보할까. 미국 월가 투자자들은 한국의 요동치는 모습을 '돈 벌기' 게임의 기회로 여기지 않을까. 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앞서 한국에 대한 포지션을 조정하면서 이익을 챙기려 들지는 않을까.

그 서슬 퍼런 IMF 체제도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극복해 낸 우리다. 세계로부터 찬사를 얻어낸 우리다. 그건 국민 모두가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심히 일했기에 남부럽지 않은 경제를 일궈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호흡을 가다듬는 일이다. 계엄과 탄핵, 그리고 초대형 항공기 사고 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호(號)가 복원력을 회복하고 추진력을 되찾는 데 초점을 맞출 때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처 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불법·탈법을 멀리하고 기초질서를 준수하는 엄격한 자율규제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IMF의 망령은 날숨과 함께 허공으로 휘익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긴 호흡, 깊은 들숨과 날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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