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akaoTalk_20250305_154019835 | 0 | 2025.2.23. 포항과의 홈 경기에서 2골을 터뜨린 강원의 이지호./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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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장원재 선임 기자 = 시간이 지났으니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자. 지난 2월 23일, 춘천 원정 경기에서 포항이 강원에게 1-2로 역전패했다. 43분 이호재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81분, 90분에 대졸신인 이지호에게 연타를 얻어맞고 졌다. 경기 후, 일부 극소수 포항팬이 선수단 버스를 막았다. 감독 등 구단 수뇌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한다. 작년 상위 스플릿 경기 무승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금년 시즌 아챔 포함 3연패는 팬이라면 누구나 화가 날법한 성적이다. 하지만, '버막'(버스막기)은 하지 말았어야 옳다.
축구는 근대 시민사회의 산물이다. 근대시민사회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이 기반이다. 자유와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고귀한 가치로,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다. 다만, 인류가 처음부터 이런 원칙을 세웠던 것은 아니다. '자유'와 '인권'은 그것을 얻어내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덕에 얻어진 결과물이다. '폐하께서는 우리 위에 계시지만 법 아래 계시다'는 영국의 선언적 언명 이후, 군주가 자의적으로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시로 박탈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는 문명사회의 상징이다. 고대, 중세사회와 근현대를 가르는 확실한 기준이다. 그만큼 자유는 소중하다. 하지만 무한정은 아니다. 자기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압할 수는 없다. '내 자유'가 소중하다면, '타인의 자유'도 못지않게 소중하다. 그래서 '버막'은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이다. '팬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선수단의 자유를 제한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 KakaoTalk_20250305_154028151 | 0 | 강원:포항의 2025 K리그 1 2라운드 경기. 강원이 2-1로 역전승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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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버막'은 '내가 응원하는 우리 팀'의 경기력을 상당한 정도로 훼손하는 행위다. 세상에 지고 싶어하는 축구 선수와 감독은 없다. 포항 선수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부조작사범들이야 축구에 기생하는 사기꾼들이니 논외로 하자. 훌리건이 축구팬이 아니라, 축구를 이용해 자신들의 사회적 불만과 열등감을 과격하게 표출하는 난동분자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프로 운동 선수의 신체는 생각보다 섬세하다. 1982년 4월 동양웰터급 타이틀매치가 열렸다. 챔피언 황충재는 '동양의 무적함대'로 불리며 22연승(19KO)을 구가하고 있었다. 도전자 황준석은 15승(6KO) 전승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챔피언에 비해서는 모든 것이 열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도전자의 8라운드 KO승. 2회 기습적인 롱훅에 챔피언이 다운되었고, 3회에서도 두 번이나 링바닥에 쓰러졌다. 4회부터 8회까지는 일방적인 진행.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수퍼 스타 슈거 레이 레너드와의 일전이 약속되어 있었기에, 황충재 측은 역전 럭키펀치를 기대하며 무리수를 둔 것이다. 순리대로라면, 이 경기는 2라운드에, 적어도 3회에 중단되었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그로기 상태에서 8회까지 무수한 펀치를 허용한 탓에 사실상 황충재의 선수 생명이 끊어지는 일을 없었을 것이다. '경기 직후'는 특수 상황이다. 선수의 체력이 바닥난 시간이다. 비유하자면, 몸살 기운이 막 몸으로 스며드는 상태다. 이때의 10분은 그래서 같은 10분이라도 평소의 10분과는 중요성이 다르다. 무조건 빨리 쉬고 회복하고 충전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의 경기력 유지 및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KakaoTalk_20250305_154025561 | 0 | 강원과의 경기를 지켜보는 박태하 포항 감독./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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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가 없어지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필자같은 사람도 있지만, 지구상에는 축구가 없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전체 인구의 50%는 넘는다고 본다. 만약 포항제철 수뇌부가 축구에 별 관심이 없고, 축구의 중요성도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로 채워진다고 가정해 보자. 매년 수백 억을 투자하는데, 팬들이 그렇게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축구는 만년 적자 누적 사업이며, 일부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극성팬들이 버스를 막고 시위한다? 그래도 포항제철 수뇌부가 지금처럼 구단을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투자를 늘릴까?
필자는 포항을 사랑한다. '족보 없는 축구는 가라!'라고 외치는 포항팬들의 함성에 공감한다. 1974년 3월 제22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가 열렸다. '신생팀' 포항제철은 창단 후 첫 참가 우승이라는 파란을 일으켰다, 준결승에서 고대를 물리쳤고, 3월 17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성균관대를 2-1로 꺾었다. 두 골 모두 필자의 우상 이회택의 득점이었다. 관중석의 어른들이 '포철은 사설 국가대표팀'이라고 말씀하시던 일을 잊지 못한다. 작년에 출시한 레트로 경기복보다는 더 검붉은 빛이 감도는 '쇳물색' 상의도 잊지 못한다. 필자와 포항은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77년 말 잠실로 이사했는데, 포항제철의 서울 숙소가 1979년에 완공된 장미아파트에 있었다. 연습 구장으로 쓴 곳은 2단지 내의 '공터 축구장'이다. 한홍기 감독님의 지도를 흠모하며 바라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1983년 선수촌 이탈 후 '선수자격 5년 정지' 징계받은 최순호 선수가 묵묵히 개인 훈련을 하던 처연한 광경도 기억한다. 잠실중학교 운동장이었다. 1990년 11월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경기장으로 준공한 스틸야드 개장 기념경기의 감격도 잊을 수 없다. 포항이 최문식의 득점으로 고려대를 1-0으로 물리쳤는데, 관전 환경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유럽의 전용구장 방문 때마다 관계자에게 부탁해 설계도를 받아온 분이 한홍기 감독이다. 착공 무렵, '벨기에의 한 경기장을 모델로 삼았다. 박태준 회장님 결단이다. 1~2층 사이의 귀빈석만 빼고 완전 유럽식으로 지을 것'이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던 한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KakaoTalk_20250305_153918950 | 0 | 2025.2.25. K리그 1 개막전 포항: 대전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포항 서수단./ 사진=전형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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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포항팬도 사랑한다. 진정으로 축구를 아끼기 때문이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 등 아름답지만 득점과는 무관한 장면인데도 전 관중이 탄성을 내지르며 실시간으로 함께 반응하는 곳은 전국에서 포항이 유일하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포항 팬들과 일체감을 느꼈다. 마치 유럽 어느 경기장에 온 것 같았다. '관중석 전문가'들의 분석도 경청할만한 대목이 허다했다. 포항팬의 경기 몰입도와 분석력, '축구 사랑'이 국내 최고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는 배경이다. 지금은 상황 변화로 노래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필자가 좋아하는 포항의 응원가가 있다. '별이 두 개래!'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알아야 공감할 수 있는 가사 내용이 유머러스했다. 상대를 다소 도발하는 내용이지만, '역사적 배경'이 깃든 응원가라니 이 얼마나 멋진가. 축구장에선 그 정도의 조롱은 허용치 이내다. '별이 두 개래!'처럼 유머러스하게 하면 하는 사람의 품격도 올라간다. 하지만 '버막'은 허용치 바깥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 사랑한다고 모든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내 사랑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축구팬과 현대 시민의 기본 자세다.
 | KakaoTalk_20250305_153929544 | 0 | 포항 스틸야드는 모든 한국 축구팬에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사진=장원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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