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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칼럼] 저성장은 운명인가: 한국 경제 2%대 잠재성장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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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3. 05. 17:55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한국 경제는 이미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 성장률은 장기적으로 하락해 왔고 반등의 동력도 약하다. 고도성장을 거쳐 선진국 단계에 접어들면서 자본축적률이 낮아지고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며 생산성 증가세도 둔화되고 있다. 잠재성장률(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 가능한 최대 성장률)은 이미 1%대로 낮아졌다. 노동투입 감소만으로도 잠재성장률 하락 압력은 계속된다. OECD는 204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 전망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정책 선택의 폭을 좁히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키우며,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능력을 약화시킨다. 저성장은 일시적 경기 둔화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제약 조건을 바꾸는 구조적 변화다.

물론 국가의 목표는 성장만이 아니다. 안정, 공정한 분배, 복지, 재정 건전성, 국가 경쟁력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함께 불평등과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목표는 지속적인 소득 증가를 토대로 달성될 수 있다. 소득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분배 갈등은 커지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약화된다. 복지 확대나 미래 투자를 위한 재원도 줄어든다. 잠재성장률을 2%대로 회복하는 것은 단순한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안정과 통합을 좌우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성장 경로를 바꿀 여지는 얼마나 될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의 질 개선과 기술 진보가 결합될 경우 중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약 1%포인트 높일 수 있다. 이는 인구 감소에 따른 직접적 성장 하락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장의 관건은 인구가 아니라 제도와 전략이다.

이제 성장 전략은 '요소 확대'에서 '생산성 향상'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노동과 자본을 늘리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인구와 수출시장이 확대되던 시기에는 양적 투입이 곧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력이 줄어들고 일부 산업은 구조적 쇠퇴 국면에 있다. 또한 보호무역주의 확산,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으로 세계 시장 환경도 매우 불확실해졌다. 이런 여건에서는 단순한 요소 투입 확대만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성장의 핵심은 사람과 기술,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제도와 정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해 생산성을 높이느냐에 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 전략, 인적자본 전략, 산업정책은 각각 독립된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성장 메커니즘을 이루는 상호보완적 축이다. 세 요소가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를 만들 때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첫째, AI 중심의 신기술 전략이다. AI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생산과 연구, 서비스 전반을 바꾸는 범용기술이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반도체 산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으며 정부도 AI 대전환과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확산과 활용이다. 이를 위해 인프라 확충, 데이터 접근성 개선, 규제 명확화, 인력 재교육, 노동시장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적하듯 한국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낮아 신기술 적응이 쉽지 않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인적자본 전략이다. 노동력 감소 시대에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한국은 교육의 양적 확대에는 성공했지만 대학 경쟁력, 교육―직무 미스매치, 성인 디지털 역량 저하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교육은 암기 중심에서 문제 해결력과 비판적 사고, 협업 역량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중장년층 재교육과 평생학습 강화도 필수다. 인간은 AI와 경쟁하기보다 협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셋째, 전략적 산업정책이다.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산업정책은 불가피하다. 현재 정부도 반도체, 방산,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전략 산업 육성과 15대 선도 프로젝트, 지방 산업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정책은 보호가 아니라 전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과 기반 평가, 정부―민간 협력, 실패 시 신속한 자원 재배분 원칙이 지켜질 때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핵심은 AI와 인적자본이 가장 생산적인 부문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전략의 시너지다. AI 투자가 확대되어도 이를 활용할 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효과는 제한적이다. 인적자본이 축적되어도 산업 구조와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역량은 사장된다. 산업정책이 추진돼도 기술과 인력이 결합되지 않으면 재정 지원은 비효율로 귀결된다. 세 전략이 동시에 정합적으로 설계·실행될 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힘이 생긴다.

정부도 AI 투자 확대와 첨단 산업 육성, 인재 양성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전략'을 제시했다. 방향은 대체로 옳다. 그러나 개별 정책의 나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세 전략을 연결하는 제도적 정합성, 노동시장 유연성, 교육 개혁, 정부 지원의 엄정한 성과 평가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책의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너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2%대 성장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인구 감소는 피할 수 없지만 저성장은 피할 수 있다. AI, 인적자본, 산업정책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선순환을 이룰 때 잠재성장률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인구가 아니라 제도와 전략의 질에 달려 있다.

이종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석좌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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