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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IRBM 쏜 푸틴, 견문발검인가? 심리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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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1. 24. 18:00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정훈TV 대표
이정훈 선배
이정훈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정훈TV 대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오레시니크'를 쏜 것을 놓고 난리다. 러시아가 오레시니크에 재래식탄두 대신 핵탄두를 달아 쏘면 인류 종말을 각오해야 하는 3차 세계대전을 맞을 수 있는 탓이다. 푸틴은 이 발사를 시험발사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오레시니크 시험발사를 계속해 성능이 확인되면 대량 생산을 하겠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졸'로 보는 '미치광이 전술'을 쓰는 듯하다.

그런데 특이 점이 발견된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미국에 통보하고 쏘는 배려를 했다. 이는 푸틴이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푸틴은 미국을 상대로 정치게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심리전을 하고 있다. 푸틴의 속을 알려면 냉전 때부터 시작된 미·소, 미·러 대화사(史)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전에 주목할 것이 있다. 2차대전 종전 전까지 미·소는 일본·독일과 싸운 연합국이었단 사실이다. 미국은 이 연합국을 'United Nations(UN)'로 불렀는데, 종전 후 이를 확대해 국제기구 유엔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합국이 의견 차이로 말싸움과 대리전을 하며 대립한 것이 '냉전(cold war)이다.

냉전은 소련이 미국에 이어 핵과 ICBM·SLBM으로 대표되는 전략무기를 가짐으로써 확대됐다. 그런데 유엔이라는 연합국 체제는 유지했기에 대화도 했다. 그 결과물이 우리말로 옮기면 '전략무기 제한회담'이 되는 SALT(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이다. 주목할 것은 '제한'을 뜻하는 Limitation이다. 그때의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늘려갔기에 잘못해 이를 사용하면 인류는 공멸을 맞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몇 기 이상은 갖지 말자는 '제한'에 합의했다.
미·소는 탄도미사일을 잡는 능력도 개발했다. 전략무기를 제한했는데 한쪽이 탄도미사일 잡는 능력을 보유하면 다른 쪽은 불리해지니, 이 능력도 제한하기로 했다. 탄도미사일을 잡는 능력을 ABM(Anti Ballistic Missile)으로 불렀다. 1972년 미소는 SALT와 ABM 조약을 맺으면서 오인이나 오해로 인한 핵전쟁을 막기 위한 대화채널을 구축했다.

그리고 새로운 경쟁에 들어갔다. 전략무기를 대형화하고 양을 지켰지만 실제로는 늘이는 다(多)탄두화에 매진한 것이다.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던 1983년 미국이 소련이 쏜 다탄두 탄도미사일을 막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했다. 소련은 이를 ABM 조약 위반이라고 반발하며 소련판 SDI인 '폴류즈'를 추진했다. 때문에 냉전은 더욱 치열해졌는데 힘이 달린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 처지에서는 ABM 유지가 더 중요했기에 1987년 항공기에서 투하하는 핵폭탄과 ICBM·SLBM을 제외한 모든 중거리 핵전력을 없애는 INF(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조약을 맺은 것이다. 그럼에도 동유럽 공산국가가 무너지는 위기를 맞자 소련은 1990년 양국의 핵무기를 대폭 줄이는 전략무기 감축조약(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ies, START)도 맺었다.

INF 조약은 1991년까지 유효했는데, 이후 양국은 후속 합의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INF 조약은 폐기됐지만 양국은 이 조약 정신을 이어받아 중거리 전략무기는 만들지 않았다. 2002년 ABM 조약도 만료되자 SDI를 했던 미국은 전략미사일 방어체계인 MD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분야를 진척시키지 못했기에 2002년 전략무기를 줄이는 SORT(Strategic Offensive Reductions Treaty)를 맺고, 2010년에는 전략무기를 더 줄이고 상호 검증도 하는 뉴 START도 맺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듬해인 2023년 푸틴은 미국을 압박하려고 뉴 START 파기를 선언해, 미·러간 핵 합의는 SORT만 남게 됐다.

푸틴이 실효된 INF 정신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IRBM인 오레시니크를 개발하게 하고, SORT에 따라 미국에 '통보'를 한 후 우크라이나를 향해 쏘게 했다. 푸틴은 이를 고도의 정치게임과 심리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면에는 서방의 제제로 우크라이나 공격할 단거리 탄도미사일(이스칸데르)을 제작하지 못하는 러시아의 절박함이 발견된다.

북한에서 도입한 단거리 미사일은 불량이 많고 양도 제한돼 있으니, 푸틴은 몰래 개발해오던 IRBM을 꺼내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닭 잡을 때 소 잡는 칼을 들면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물자가 부족한데 정치게임과 심리전을 한답시고 견문발검(見蚊拔劍)을 한 푸틴의 최후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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