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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트럼프 대통령 1기 외교의 최대 실적은 중동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추진일 것이다. 2020년 9월 이스라엘과 아랍 왕정국가들 간의 아브라함 협약 체결은 1993년 9월 오슬로 협정체결 이래 답보상태였던 중동평화 프로세스에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 협약은 2022년 2월 팔레스타인이 가자전쟁을 도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팔레스타인을 도외시한 압박외교의 한계였다. 그리고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이후 가자 해변에 최고급 리조트 시설을 건설하자는 구상을 내보였다.
국내외 언론은 트럼프 2기 외교의 방향이 조만간 한반도로 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관계는 "분노와 화염(Fury and Fire)"의 레토릭으로 시작해 김정은 위원장과의 우호적 서신교환으로 마감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 요구 그리고 미국의 북한핵포기 조건이 합의되지 않고 중단되어 한국 패싱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과 북한 간의 이해가 경합하는 부분은 북한의 핵투발 위협을 제거하면서 북한을 미국의 경제권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여부다. 여기에 한반도 내에 미국의 경제와 군사적 프레즌스를 확대할 수 있다면 획기적 성과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4개국의 입장이 변수로 작용하므로 북미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더구나 북한은 북러관계의 강화로 민감해진 중국의 조바심을 이용해 중국으로부터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 런던 킹스 칼리지 국제관계학 교수는 한국이 단순히 강대국 특히 중국에 휘둘리지 말고 외교정책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성숙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대칭적이며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보유한 한국의 역량을 주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과 경제력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군사력과 지정학적 가치 그리고 K 컬처가 지닌 세계성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간의 직접 협상은 우리에게 불편하고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에 대한 냉철한 현실감각과 능동적 대처는 최적의 외교적 응전을 위해 불가결하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정보를 확대하고 인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포함된다. 2023년 11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제96차 통일학 포럼에서 토의된 '국제 미디어' 주제발표는 국내외 언론의 정확한 북한 보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북한에 관한 왜곡 또는 허위정보를 검증하고 수정함으로써 정세분석에 혼란을 방지하고 정확한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평가다. 탈북자나 탈북조력자들이 생계용 또는 대남전략용으로 제공하는 허위정보를 검증할 수 있고 북한근무 경험이 있는 서구 외교관들의 견해도 이와 유사하다.
국제사회의 예상과는 달리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체제는 장기화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지속이 어렵다는 관측과 달리 북한은 경제개발에 총력전을 표방하고 외교적으로 광폭 행보 중이다. 2024년 러시아 파병에 이어 2025년 중에는 원산 갈마해안 관광 지구를 국제사회에 개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관심을 가질만한 프로젝트안을 놓고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외신은 1960년대 한국의 월남파병이 경제발전의 전기가 된 것처럼 러시아파병은 북한의 국력 상승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북한의 광폭외교와 개방화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과거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이 경험했던 군사적 충돌 또는 외교적 협상의 가능성이다.
남북한과 미국 삼자 간의 주요 현안은 정전협정 체결과 북한핵 문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프로세스가 놓여 있고 동시에 전쟁과 영구분단 프로세스도 놓여 있다. 1990년 냉전 체제가 붕괴하면서 국제질서의 재편기에 독일은 통일을 성취했고 이후에는 동독 출신 인사가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될 정도로 사회적 통합을 이루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남북 예멘도 통일을 선언했다. 그러나 몇 년 후에는 대리전 성격의 예멘 내전으로 변했다. 동서독과 남북예멘 모두 미국과 소련을 배후로 하는 외세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나 주도적으로 상황을 처리하는 민족적 의지와 역량에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남북한 관계가 통일 전 독일 모델인지 또는 예멘 모델인지를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북미관계의 동향을 파악하기에 앞서 명료한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원칙의 일관성과 확실한 방향을 정한 후에 로드맵은 동력을 받는다. 이것은 헌법에 명시된 평화적 통일이며 과거 정권에서 축적된 장기적 대북정책의 연속성 유지일 것이다. 그리고 국민에 비전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끄는 리더십의 역할일 것이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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