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제작 편수 감소해 '제2의 박찬욱' 발굴·양성 어려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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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 영화 제작을 기업에 빗대면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미래의 가치를 보고 출발하는 스타트업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 스타트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인큐베이팅에 필요한 거대 자본 즉 상업 영화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이 효과적으로 분산 투자돼야 하는데, 이 같은 시스템이 비교적 잘 구축된 곳이 바로 할리우드여서다.
다음 달 열리는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에서 한국 장편 영화가 단 한 편도 상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두고 여러 이유가 제시되고 있으나, 근본에는 한국 영화 산업의 붕괴 조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고 영화계 종사자들의 공통적인 시각일 것이다. 관객 감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득세 등으로 3~4년째 불황이 이어지고 제작 편수 자체가 줄어들면서 박찬욱·봉준호·홍상수·이창동 등의 뒤를 이을 이른바 '차세대 국가대표'급 감독들의 발굴 혹은 양성이 불가능해지다시피 한 지금, 칸의 한국 영화 배제 혹은 외면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란 얘기다.
돌이켜보면 한국 영화가 칸과 가까워진 시기는 한국 영화 산업의 틀이 잡히면서 덩치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때와 절묘하게 겹친다. 1998년 국내 최초의 복합상영관 CGV가 개관하고 이듬해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을 알린 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이어 2002년 '실미도'와 2003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불러모았고,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칸의 러브콜을 못 받은 게 이토록 호들갑 떨 일이냐고 누구는 역정을 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칸이 세계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대수롭게 여길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엄밀히 말해 미국의 로컬 영화상인 아카데미를 빼고,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을 양적·질적으로 폭 넓고 심도 깊게 다루는 영화 잔치는 칸이 거의 유일하다. 베니스와 베를린이 세계 3대 영화제로 칸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나름 애쓰고 있지만, 규모와 영향력적인 측면에서 칸에 뒤진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이다.
얼마전 만난 국내 유수의 한 영화 투자·배급사 임원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국 영화계를 가리켜 "멸종을 기다리는 공룡 같다"고 말했다. 엄살과 과장이 섞인 자조적인 표현이겠으나, 쪼그라든 전체 박스오피스 규모와 더불어 칸의 장편 경쟁 부문은 고사하고 미드나이트 스크리닝과 주목할 만한 시선 등 완성도 높은 상업 영화와 유망주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에서도 모두 제외된 현실을 지켜보고 있자니 동의하고 싶어지는 한마디다. 결코 그렇게 가선 안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