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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기업] ‘갤럭시 사상 가장 빠른칩’이라더니 ‘성능저하 앱’ 강제적용…그래도 ‘삼성’ 손 들어준 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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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5. 08. 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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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법정에 서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다만 거대 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기업들은 법정에서조차 약자가 아니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곧 책임의 면제를 의미하진 않는다. 아시아투데이는 '법정에 선 기업' 시리즈를 통해 단순한 승패를 넘어, 기업을 둘러싼 법적 쟁점과 그 이면의 사회적·제도적 맥락을 조명한다. 판결문 속에 숨어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윤리·사회적 과제를 살펴보며 법정 밖 진짜 책임의 무게를 묻는다. <편집자주>

'갤럭시 사상 가장 빠른 칩' '독보적 성능 구현' '모바일 게임에 최적화된 환경'

대한민국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2월 갤럭시 S22 시리즈 성능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과열을 막겠다며, 성능을 강제로 제한하는 앱을 소비자 고지 없이 의무 탑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같은해 3월 갤럭시S22 사용자 1882명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1인당 3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3년의 법적 공방 끝에, 1심은 삼성전자가 기만적인 광고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용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논란의 핵심은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였다. GOS는 고사양 게임을 실행할 때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의도적으로 낮춰 과열을 방지하는 기능이다.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인 발열 관리 기능이지만, 실제로는 성능 저하를 유발하면서도 이를 소비자에게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GOS 자체는 갤럭시S22에만 새롭게 탑재된 기능은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16년 갤럭시 S7 시리즈부터 해당 기능을 도입했지만, 당시에는 사용자가 우회적으로 앱을 비활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12 기반 '원 UI 4.0'으로 업데이트된 이후로는 이 같은 비활성화가 원천 차단됐고 S22 시리즈부터 GOS가 강제적용됐다.

당시 업계에서는 엑시노스 2200의 발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삼성전자가 이를 감추기 위해 GOS로 성능을 제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각에선 GOS가 고사양 게임뿐 아니라 일반 앱에도 성능 제한을 적용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전자는 GOS의 설정을 일부 사용자 선택형으로 변경했지만, 이미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용자들은 삼성전자가 성능을 제한하면서 '갤럭시 사상 가장 빠른 칩'이라고 광고한 것은 표시광고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GOS 의무 탑재 등에 대해 아무런 고지를 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민법상 불법행위 및 소비자기본법 위반도 함께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기만적 표시·광고 행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갤럭시 S21· S22 시리즈 스마트폰에 적용된 GOS 개별정책과 관련해 '일부 고사양 게임 앱을 이용하는 경우 클럭 수 상한 설정으로 게임사가 설정한 최초 FPS보다 속도가 인위적으로 느려짐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로 하여금 그러한 속도 제한 없이 가장 빠른 속도를 즐길 수 있다'고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광고행위를 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기만 광고가 소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원고들이 피해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원고들 중에는 GOS가 도입되기 이전에 제품을 구매했거나, GOS 클럭 제한 해제 이후에 기기를 사용한 이들도 포함돼 있다"며 "스마트폰에 GOS가 실제로 작동됐고, 고사양 게임 등에서 성능 저하를 경험했다는 점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 일부 고사양 게임 앱이 아닌 일반 앱에 대해서도 GOS 개별정책이 적용됐다거나 삼성전자가 그 도입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원고들은 아무런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선택권 침해' 주장에 대해서도 "GOS가 적용되는 고사양 게임 앱이 설치된 단말기 비율은 국내 기준 약 5.5%로 GOS 적용 여부가 전체 일반 소비자를 기준으로 모바일기기의 구매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소비자 기만은 있었지만 그로 인한 손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는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게 됐다. 소비자 다수가 문제를 제기해도 개별 피해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일반 소비자의 싸움이 왜 '다윗과 골리앗'에 비유되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사용자들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법정 공방은 2라운드에 돌입했다. 사용자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에이파트의 김훈찬 대표 변호사는 "1심에선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증거 제출에 소극적이었고, 기술적 사안이라 강제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표시광고법 위반 관련 신고를 접수해 조사에 착수했고, 상당한 자료를 확보한 걸로 안다. 공정위가 심사 보고서 등을 현출해준다면 삼성전자 측 제출 자료와의 면밀한 비교·검토를 통해 2심에서 주요 증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아직 1심 판결만 나온 상태로,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별다른 대응이나 광고·마케팅 전략 재검토는 없었다"고 밝혔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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