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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의병의 날, 의성군 부자의병(父子義兵)…나라를 구하고자 충을 실현한 권희순·권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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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권병건 기자

승인 : 2024. 06. 02. 10:11

부자의병 권희순·권수경 두 분을 여기에 소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 기리는 날
의성 점곡 사촌의병 기념관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에 위친한 의성의병기념관의 모습이다. 이곳은 120년 전 대륙 침략야욕의 일본침략에 항거했던 의병의 본산이다./권병건 기자
'호국 의병의 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 싸운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발전시켜 국민통합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제정된 대한민국의 기념일이다.

2008년 8월 의령군수 등 1만 5586명이 '호국 의병의 날' 기념일 제정을 국회에 청원했고 2010년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임진왜란 시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1592년 음력 4월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로 선정했다.

6·1 의병의 날을 맞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출생인 의성 고을의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고자 충을 실현한 부자의병 권희순·권수경 두 분을 여기에 소개한다.

행정공(杏亭公) 식(軾)의 현손 별시(別侍) 숭조(崇祖)의 증손이며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사형(士衡)의 손자 호군(護軍) 무성(武成)의 셋째 아들이다. 명종 3년인 1548년 무신 6월 3일에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沙村里) 집에서 출생했다.
공은 소시부터 재예(才藝)와 경륜이 특출하고 천문지리와 병학(兵學) 산수(算數)에까지 박통(博通)해 향시(鄕試)에 세 차례 올랐다. 선조 16년, 1583년 계미년 36세로 무과에 급제했다. 창방(唱榜) 하는 날 임금이 칭찬하기를 "이는 이른바 문무(文武)를 겸전한 재목"이라고 했다.

이듬해 갑신에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고 선조 18년, 1585년 을유에는 용양위부사과(龍衛副司果)가 됐다. 다음 해 선조 19년 1586년 병술에는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과 내금위별시(內禁衛別侍)를 역임하다가 모친상을 당해 귀가해 집상(執喪)했다.

그 후 선조 25년, 45세인 1592년 임진(壬辰)에 왜란이 일어나 열읍(列邑)의 수령이 모두 성을 버리고 도주해 버림에 안집사(安集使) 김륵에 의해 본군(本郡) 의성(義城) 고을의 수성장(守城將)으로 임명돼 경상좌병사(慶尙佐兵使) 성윤문(成允文)과 더불어 합진(合陣)해 전공을 세움에 있어 의성의 군액(軍額)이 가장 두드러진 바 있었다.

이에 곧 안동부(安東府)의 판관(判官)으로 제수됐다. 선조 26년 1593년 계사에는 46세로서 장기현감(長基縣監)으로 배수됐다.

정예 장사 3~400명과 대전을 해 크게 전과를 올리고 적을 참획(斬獲)한 것이 많았다. 이때 홀연히 겨드랑이 아래에 유혈이 낭자한 것을 보고 비로소 유환(流丸)에 맞은 줄을 알았으나 격전에 정신이 없어 심한 통증도 잊고 철야로 성을 돌며 독전 했다. 그러나 이때의 무리로 상창(傷瘡)이 더욱 침중케 되니 부득이 관직을 사하고 귀향케 됐다.

선조 29년, 1596년 병신에 훈련원 판관(判官)에 제수되고 동 30년에는 오위도총부도사(五衛都總部都事)에 이어 다시 도총부 경력(經歷)에 제수됐으나 전상으로 인한 신병으로 모두 부임치 못했다. 그러다가 선조 31년 1598년 무술 5월에 신병으로 졸하니 51세였다. 공의 사적은 동사(東史)에 등재돼 있다.

배위는 숙인 나주박씨(羅州朴氏) 충의위(忠義衛) 항(恒)의 딸이고 묘소는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지동(尹岩里 枝洞)에 정좌(丁坐)로 있다.

공의 행장(行狀)은 옥간(玉澗) 박무선(朴茂先)이 지었다. 아들은 증 이조판서(贈 吏曹判書) 자락당(自樂堂) 수경(守經)이다.

정묘란 병자호란 시 경상좌도(慶尙左道) 의병도유사(義兵都有司) 권수경(權守經)은 고려 태사공 권행(權幸)의 24세(世)이며 자(字)는 자정(子正)이고 호는 자락당(自樂堂) 또는 사제당(思齊堂)이다.

부정공의 차자 별장공 균량(均亮)의 8대 종손 행정공(杏亭公) 식(軾)의 5대손이다. 별시 숭조(崇祖)의 현손이고 직장 사형(士衡)의 증손이다. 호군 무성(武成)의 손자요 장기현감 권희순(長基縣監 權希舜)의 아들이다. 선조 17년 1584년 갑신년 12월 26일에 의성 점곡(點谷) 사촌(沙村)에서 출생했다.

그들은 개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웠으며 이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의병의 숭고한 정신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또 처자 식솔을 위해, 주인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일어섰다. 삼천리강산 조선팔도에 의(義)자 붙은 고을이 몇이던가 의주·의정부·의왕·의성이 있다. 이곳 의로울 의(義) 의성(義城) 땅에 대(代)를 이어 충성(忠誠)한 부자의병(父子義兵)이 있어 여기에 소개해 보았다.

안동권씨의 능동실기(陵洞實記)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상신(相臣) 증직 포함40명 경신(卿臣) 116명 초시(初試) 이상 1085명 봉군(封君) 70명, 호당(湖堂) 6명 시호(諡號) 59명 공신(功臣) 86명이란 인물의 숫자만 보아도 대단한 명문거족이다.

안동권씨 중에도 부정공파(副正公派) 후손이 의성 점곡, 옥산을 비롯해 의성지역에 문중을 이뤄 살고 있다. 점곡 서암리(西岩里)에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제자(題字)한 사와당(沙窩堂)이란 기적비가 서 있다.

임란 시 의성수성장 운암 권희순(1548~1598) 선생 정묘 병자호란 시 경상좌도 의병도유사 자락당 권수경(1584~1659) 선생 무신란 시 의성정제장 사와 권두정(1678~1731) 선생 세 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6·1 의병의 날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날이다. 우리는 이날을 통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지쳤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님들을 한 번쯤 이라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흘러가는 역사 앞에 망각의 나락으로 빠져 버린다. 그러나 태평성대에도 잊지 말아야 할 분들이다. 의성의 관문 숭의문을 통과하며 의(義)가 무엇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권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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