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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발암물질 공장 허가 둘러싸고 지역주민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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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석 기자

승인 : 2025. 07. 25. 14:57

토평마을회집회
23일 서귀포시청에 모여 집회중인 토평동 주민들

제주도의 청정지역 서귀포에 1급 발암물질 배출이 예상되는 위험시설이 공업단지가 아닌 주거지역 인근에 허가가 진행되면서, 주민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고등어 굽는 것보다 덜하다"는 황당한 해명
지난 23일 서귀포시청 앞에서 열린 주민 집회에서 토평동 마을회(회장 양철용)를 비롯한 50여 명의 주민들은 대기배출시설 허가 절차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24일 오전 진행된 서귀포시장과 토평마을회간 면담에서 서귀포시 측은 "모든 행정절차가 적법했다"고 답변했다. 시는 "예상 배출물질이 기준치 이내"라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행정은 형식적이고, 실제 피해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주민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은 사업자 측의 무성의한 태도였다. 주민설명회에서 질의 응답에 나선 관계자는 1급 발암물질인 에틸벤젠, 크롬화합물, 포름알데히드, 납화합물, 스틸렌 등의 위험성을 묻는 주민들에게 "고등어 굽는 것보다 덜하다"는 식으로 답변해 주민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23일 집회의 찬조 연설자로 나선 양세태 전 서귀포시의원이 민관협의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현 사업자인 안정소재 주식회사의 대표와 서귀포시 오순문 시장과는 외가쪽 친인척 관계이다. 이는 행정절차상의 편의 제공여부에 대한 의혹이 강하게 든다"며 허가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했다.

양철용 토평마을회장은 "이미 토평동은 공업단지, 쓰레기 매립장, 골프장 등으로 많은 피해를 감내해왔다"며 "더 이상 주민의 생존권을 짓밟는 개발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토평마을회집회2
공장 예정지, 인근 2km이내에 있는 취약시설들.
◇취약시설 집중지역에 위험시설 허가, 건강 피해 우려 가중
더욱 심각한 것은 해당 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위치 주변 상황이다. 직선거리 2km 이내에 병원, 요양원, 장애인 재활시설, 서귀포 장애인복지관, 어린이집 등 6곳의 취약계층 이용시설들이 위치해 있다. 특히 서귀포시에서 공을 들이고 서귀포내 가장 큰 의료 시설인 헬스케어타운과는 1k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의료와 건강을 추구하는 지역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다.

또한 해당 부지는 군부대와 담 하나를 맞대고 있어, 국가를 위해 군에서 생활하는 장병들의 건강과 복무환경 역시 유해시설로 인해 큰 침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환경성 질병의 특성상 당장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지속적인 노출로 인한 건강 문제는 향후 5년, 더 나아가 10년 후에도 증상이 발병 할 수 있어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공업단지 우회한 위험시설 허가, 암묵적 확장 우려
가장 큰 문제는 이 시설이 기존 토평공업단지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위치에 들어선다는 점이다. 공업단지 내부가 아닌 주거지역과 농경지에 더 가까운 곳에 위험시설을 허가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은 "공업단지의 암묵적 확장"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들은 "발암물질이 배출되는 시설 옆에서 기른 농산물을 누가 사겠느냐"며 "생계 수단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위해시설로 인한 직접적인 건강 피해 뿐만 아니라 농산물 유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알루미늄 재처리 공정의 치명적 위험성, 전문가들 경고
문제가 되는 안정소재 주식회사의 알루미늄 재처리 공정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물질들의 위험성은 전문기관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2년 '알루미늄 공정(Aluminum production)'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으며, 알루미늄 제조 공정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알루미늄 훈증에 노출될 경우 뼈 통증과 골절률이 증가하고, 투석뇌증, 루게릭병, 파킨슨 치매, 알츠하이머 등 무서운 질병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예상 배출물질에 포함된 에틸벤젠, 크롬화합물, 포름알데히드, 납화합물, 스틸렌 등은 모두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특정대기유해물질들이다.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이러한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37종의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여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물질들이 어린이, 노약자,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게 특히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알루미늄 훈증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 피신해야 하며, 중증 발현자는 곧바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서귀포시의 안일한 대응 "적법하다"
24일 진행된 시장과 토평마을 간 면담에서 서귀포시 측은 "모든 행정절차가 적법했다"며 형식적인 답변에 그쳤다. 시는 "예상 배출물질이 기준치 이내"라고 설명하지만, 주민들은 "행정은 형식적이고, 실제 피해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안정소재 주식회사는 지난 6월 대기배출시설 허가를 신청한 후 7차례 보완 과정을 거쳐 현재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약 1216평(4020㎡) 부지에 25억원을 투입해 폐전선과 폐가전제품을 파쇄·분쇄하고 알루미늄 주괴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토평마을회집회1
공장 건설 예정지를 가르켜 주는 지역 농민과 군부대.
◇주민들 "법적 대응 불사"
마을회는 허가 절차에 대해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밝히고, 법적 대응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 언론 제보 등 다각적인 반대 운동을 예고했다.

주민들은 24일 이후에도 제2차 집회를 열어 반대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명할 계획이다. 이들은 "지역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개발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며 "서귀포시가 기업 이익이 아닌 주민의 생존권을 우선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과 행복추구권, 국가의 선택은
이번 사태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다. 헌법 제35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경권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됨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에게 환경보전 의무를 부과한 조항이다. 특히 1급 발암물질이 배출되는 시설이 취약계층 이용시설 밀집지역에 들어서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헌법은 국가에게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주민의 생존권과 유해시설 허가 사이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당연히 주민의 헌법적 권리를 우선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기업의 이기적 사업 추진과 지방정부의 안일한 대응 사이에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토평동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과연 받아들여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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