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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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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8. 11. 17:05

송정원 시집 '반대편에서 만나', 창비시선 520번으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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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원 시집 '반대편에서 만나' 표지. /창비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 / 관통해본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될 테니"

2020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송정원 시인이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 '반대편에서 만나'를 선보였다. 창비시선 520번으로 출간된 이 시집은 익숙한 일상을 낯설고 새로운 시선으로 포착하며, 존재와 삶의 본질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서정적 세계를 펼쳐낸다.

송정원의 시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애매한 공간에 주목한다. "더는 여름이 아닌 / 아직 가을은 아닌" 계절처럼, "테두리에 사는 사람" "테두리로 밀려난 사람" "테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을 포착해낸다.

시인은 "완전한 바깥이 되지 않기 위해 / 안의 끄트머리를 꼭 쥐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을 다독인다. "활짝 핀 꽃보다 / 벌어지려는 꽃잎을 꽉 껴안고 있는 / 꽃받침의 불안"에 마음을 두는 그의 시선은, "한쪽 날개로 날고 있"는 새를 보며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 추락하고 있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따뜻한 이해로 이어진다.

'반대편에서 만나'에는 삶의 구체적인 장면들이 가득하다. 송정원에게 시쓰기는 곧 기억을 쓰는 일이다. "쓴다 기억을" 그리고 "기억한다 쓰는 마음을" 이라고 고백하는 시인은, "풍경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 눈을 젖게 하는 것"이며 "잘 본다는 것은 / 시력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고 말한다.

고통과 상실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려는 것이 말해지지 않았다"는 고백에서 출발한 그의 시는, "사건도 이유도 결말도 사라진 채 느낌만 남은" 기억 속 장면들을 서사화하여 "존재와 존재가 닿는 일"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문학평론가 김미정은 이 시집을 "보이지 않게 움직이며 변이하는 세계를 미세하게 감각하고, 사라짐과 멀어짐을 다른 마주침으로 발명하며, 사라질 얼음을 물고 매일 다시 사랑을 말하는 나-너들의 이야기"라고 평한다. 시인은 "이름 없는 세상의 모든 감정, 존재, 사건, 운동에 '그래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자" 한다.

"네가 눈빛을 끄자 / 내 안에서 결심 하나가 켜졌다"는 선언 속에서 새로운 의지가 생겨나고, 비록 사라지는 "얼음을 물고 매일 사랑을 다짐해야" 할지라도 "반대편에서 만나" 하고 약속하는 송정원의 시는 독자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속삭인다.

임승유 시인은 추천사에서 "송정원의 시는 알 것 같은 데에서 시작하여 알 것 같은 흐름으로 진행된다"며 "그렇게 한눈팔고 방심하는 사이 그의 시는 도착한다"고 말한다. 읽는 이로 하여금 "내가 여기 있었던 것 같아, 그 말을 들었던 것 같아" 중얼거리게 만드는 송정원의 시는, 되짚어 읽기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읽는 행위를 쓰는 행위로 이행시킨다.

타자와의 연결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지금, 송정원 시인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 있더라도 / 관통해본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을 알게 될 테니 / 반대편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그것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당신과 / 아직 죽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 유일한 약속"이며,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다.

사라지는 말을 붙드는 다짐, 경계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마음, 삶의 순간들을 끌어안는 넉넉한 품을 보여주는 송정원의 첫 시집은 실패가 예견되어 있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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